| 2026년 3월28일 두산 vs NC 리뷰 |
| TEAM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 두산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4 | 4 |
| NC | 0 | 0 | 3 | 0 | 0 | 3 | 0 | 0 | - | 6 | 7 | 0 |
1,052일의 침묵을 깬 좌완,
창원의 봄을 열다
시범경기 ERA 0.00의 약속을 정규시즌 5이닝 무실점으로 증명한 구창모 — 두산의 4실책 자멸 속에서 NC의 공식전 10연승 행진이 새 시즌까지 이어졌다
좌완의 손끝에서 시작된 계절
3월 28일 오후 2시, 창원NC파크에 모인 18,128명의 관중이 일제히 숨을 삼켰다. 마운드 위에 선 사내는 왼손에 로진백을 쥐고 잠시 눈을 감았다. 구창모. 2023년 5월, 팔꿈치 수술대에 오른 뒤 군 복무까지 마치고 돌아온 남자가 생애 첫 개막전 선발이라는 무게를 어깨에 올려놓고 있었다.
첫 타자 박찬호를 삼루 땅볼로 돌려세우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네 개의 공. 그 네 개의 공이 1,052일간의 기다림보다 짧았지만, 그 안에 담긴 밀도는 비교할 수 없었다.
3회의 균열, 6회의 확장
양 팀 선발이 탐색전을 벌인 1~2회는 의외로 고요했다. NC 김주원이 1회말 우전 안타로 포문을 열었으나 후속 타선이 침묵했고, 두산 역시 구창모의 날카로운 커브 앞에서 배트가 헛돌았다.
경기의 균형이 깨진 건 3회말이었다. 권희동이 볼넷으로 출루하고, 박민우의 투수 앞 땅볼을 플렉센이 1루로 악송구하며 무사 1, 2루. 마운드 회의가 열렸지만 데이비슨을 파울 플라이로 잡아낸 뒤, 다음 타자 박건우가 들어섰다. 카운트 풀링 끝에 날아간 타구는 좌측 담장을 넘겼다.
전 소속팀을 상대로, 개막전 첫 홈런을 결승타로 만든 사나이의 표정은 담담했지만, 창원의 공기는 순식간에 뒤집혔다.
중반까지 3-0의 스코어는 움직이지 않았다. 구창모는 4회 카메론에게 좌전 2루타를 허용했으나 후속 삼자 범퇴로 위기를 잠갔고, 5회까지 87구 2피안타 무실점으로 임무를 완수하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6회는 NC 불펜과 두산 수비 사이의 온도차가 극명하게 드러난 이닝이었다. 서호철 볼넷, 최정원 희생번트로 만든 1사 2루. 배재환을 상대로 등판한 이병헌 앞에 들어선 권희동이 좌전 적시타를 때려 4-0. 이어 박민우의 유격수 앞 땅볼에서 박찬호의 송구가 다시 빗나갔다. 80억 원 FA의 이날 두 번째 실책. 기회를 놓치지 않은 데이비슨이 우중간 2점 적시 2루타로 쐐기를 박았다. 6-0. 승부는 사실상 여기서 끝났다.
승부의 분기점: 플렉센의 6사사구, 흔들린 수비
이 경기의 분수령은 단일 장면이 아니라 하나의 '구조적 붕괴'였다. 두산 선발 플렉센은 시범경기에서 12⅓이닝 21탈삼진 ERA 0.73이라는 압도적 수치를 찍으며 복귀 시즌의 기대감을 한껏 끌어올렸다. 그런데 정규시즌 마운드는 달랐다.
4이닝 동안 93구를 던졌고, 그중 스트라이크는 55개에 불과했다. 스트라이크 비율 59.1%는 선발 투수의 마지노선인 62%를 밑도는 수치다. 볼넷 3개에 사구 3개, 합산 6사사구. 피안타는 2개에 그쳤지만 스스로 주자를 실어 나른 셈이다.
결정적인 3회 박건우 홈런 직전의 상황을 보면, 권희동 볼넷과 자신의 송구 실책이 겹쳤다. 플렉센 스스로가 위기를 키운 구조 위에 팀 수비까지 무너졌으니, 3점은 '빼앗긴' 것이 아니라 '내어준' 것에 가깝다.
두산은 이날 경기 전체에서 4실책을 기록했다. 개막전에서의 4실책은 단순한 컨디션 문제로 치부하기 어렵다. 특히 박찬호의 2실책은 새 유니폼을 입고 처음 선 정규시즌 무대에서의 긴장이 수비 동작에 그대로 투영된 결과로 읽힌다. 시범경기의 자신감과 정규시즌 첫 경기의 중압감 사이, 그 간극을 메우지 못한 것이 두산 패배의 본질이었다.
KEY PLAYER
1,052일. 이 숫자 하나가 오늘 구창모의 투구를 설명하는 가장 강력한 맥락이다. 2023년 5월 11일 KT전 이후 정규시즌 선발승이 없었던 남자가 개막전이라는 가장 무거운 무대에서 5이닝을 완주했다. 시범경기 2경기 6⅔이닝 무실점에 이어 정규시즌에서도 ERA 0.00을 이어갔다. 최고 구속 145km/h 내외의 직구는 전성기에 비하면 빠르지 않지만, 커브와 체인지업의 궤적 차이가 두산 타선을 끊임없이 속였다. 원래 2선발 예정이었으나 라일리 톰슨의 복사근 파열로 하루 앞당겨진 등판. "잠을 못 잤다"던 이호준 감독의 걱정을 87구의 절제된 투구로 지워버린 것은 구창모가 아니라 '건강해진 구창모'였다.
전 소속팀 두산을 상대로 시즌 1호 홈런을 개막전 결승 스리런으로 장식했다. 지난 시즌 커리어 로우 급 성적(9홈런, OPS .797)을 찍으며 고개를 숙였던 박건우에게, 이 한 방은 단순한 3타점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3회 무사 1, 2루에서 플렉센의 실투를 놓치지 않은 타격은 경험에서 나오는 상황 집중력의 산물이었다. 시범경기 타율 .455로 이미 배트 감각이 살아 있었고, 개막전에서 그대로 증명해 보였다.
시범경기 ERA 0.73, 21탈삼진이라는 화려한 수치가 무색한 개막전이었다. 최고 구속 152km/h의 직구는 건재했지만, 커브와 커터의 제구가 흔들리면서 볼넷이 쌓였다. 3실점 중 자책은 2점. 1점은 자신의 송구 실책에서 비롯된 비자책이니 결국 스스로 무덤을 판 셈이다. 2020년 두산에서 한국시리즈를 밟았던 베테랑이 6년 만에 돌아온 첫 무대에서 보인 제구 난조는 분명 예상 밖이다. 다만 시범경기에서 보여준 구위 자체는 여전히 리그 상위 수준이었기에, 한 경기의 난조를 시즌 전체로 확대 해석하긴 이르다.
벤치 전술 리뷰
구창모를 5이닝에서 내린 결정은 현명했다. 87구라는 투구수 자체는 더 가볼 수 있는 수치였지만, 부상 이력이 있는 투수의 시즌 첫 등판에서 욕심을 부리는 것은 3월의 1승보다 10월의 건강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과 맞닿는다. 이후 배재환–임지민–김진호–김영규–이준혁으로 이어진 불펜 릴레이가 4이닝을 완벽하게 틀어막으며 계투 운용의 깊이를 과시했다. 개막전에서 불펜 5명을 투입한 것은 다소 공격적이지만, 6-0 리드 상황에서 각 투수에게 1이닝 이내의 부담만 준 것이니 시즌 장기 운용 측면에서도 합리적이었다.
신임 감독의 첫 정규시즌 경기가 완봉패로 마무리된 것은 뼈아프다. 플렉센의 제구 난조가 뚜렷해진 3회 이후에도 4회까지 끌고 간 것은 불펜 보호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지만, 4회 카메론 2루타로 만든 유일한 반격 기회에서 대주자 김민석을 투입하고도 후속 타자가 침묵한 것은 타선 전체의 문제에 가깝다. 두산 타선은 이날 단 4안타, 무득점. 양의지, 양석환 등 중심 타선의 침묵이 특히 뼈아팠다. 한 가지 아쉬운 대목을 짚자면, 3회 무사 1, 2루 상황에서 마운드 방문 이후 곧바로 좌타자 박건우를 상대하게 한 흐름이다. 볼넷이 쌓이는 투수에게 이닝을 더 주기보다, 좌완 투수로의 계투 전환을 고려해볼 수 있는 장면이기도 했다.
시즌 맥락에서 본 이 경기
이 승리로 NC는 지난 시즌 정규시즌 마지막 9연승에 이 경기까지 더해 공식전 10연승을 기록했다. 2025년 시즌 막판 7위에서 5위까지 치고 올라 극적으로 가을야구에 진출했던 그 기세가 겨울을 넘기고도 살아 있다는 뜻이다. 이호준 감독 체제 2년 차, "지난해 9연승 때의 팀 분위기가 오늘 다시 나왔다"는 감독의 경기 후 코멘트는 단순한 립서비스가 아니라 팀 컬처의 연속성을 시사한다.
반면 두산은 2025년 9위라는 뼈아픈 성적표를 안고 김원형 감독 체제로 새출발했으나, 개막전에서 4실책 완봉패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맞았다. FA 대어 박찬호(4년 80억)의 합류에도 불구하고 수비 연계가 개막전 수준에 미치지 못한 것은 새 내야 조합이 안정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는 신호다. 다만 시범경기에서 보여준 타선의 잠재력과 플렉센의 실제 구위를 감안하면, 이 한 경기로 시즌 전체를 점치는 것은 성급하다.
Next: 내일의 관전 포인트
29일 같은 구장에서 열리는 2차전. NC는 신외인 커티스 테일러가, 두산은 에이스 곽빈이 선발로 나선다. 두산으로서는 곽빈의 안정적인 투구를 바탕으로 개막전의 악몽을 빠르게 지우는 것이 급선무다. NC 입장에서는 테일러의 KBO 적응도가 관건이다. 라일리 톰슨의 빈자리를 커티스 테일러가 어떤 수준으로 메울 수 있느냐가 NC 선발진의 시즌 향방을 가를 첫 번째 테스트가 된다.
박찬호의 수비 회복, 플렉센의 멘탈 리셋, 그리고 NC 타선이 개막전의 집중력을 이틀 연속 유지할 수 있는지 — 내일은 오늘보다 더 많은 질문에 답해야 하는 경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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